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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1 일상의 대화

 

이해란 무엇일까?

理解, 문자 그대로를 살펴보면, '사리를 해석 분석한다.' 더 나아가 '사리를 깨닫는다, 안다.' 

같은 뜻으로 양해 諒解, '살펴보고 깨닫는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남의 사정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를 한다.

아는 것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시각, 관념으로 어떤 개념이 들어오는 이 행위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한 번 '이해'를 한다면, 그 뒤의 '이해'를 못함으로 돌아오는 에너지의 소모는 더 크다.

 

바쁘고, 살기 힘들고, 길이 잘 보이지 않은 삶속에서 어떤 것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유지만으로도 힘든 이 상황속에서 사치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조금만 생각이 다르고, 표현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것에 대해 '다르다' 가 아니라 '틀리다'로 치부해버리고

단정지어 우리는 그 소모할 에너지량을 줄인다.

 

나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드는 것을 단숨에 지워버림으로써 정말 말 그대로 내 에너지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일테니까.

 

그러나 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이해'가 들어있는 것인가?

'이해'하려는 행동조차 시작해보지 않은 '불필요'는 어찌해야할 것인가?

 


Empire magazine cover.


얼마 전 'JOKER'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스포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악당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인물에 대해 

그렇게까지 '이해'를 요구한 영화는 없었다.

더군다나 악당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언가 터부시되는 느낌이 더불어 있었기에...

 

이 영화는 달랐다. 철저하게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현실, 그의 심리, 그가 당면하고 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며 그 어두움 속에서 살인 저지른 조커를 정당화하는 느낌보다는, 

조커의 그늘뒤에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아서 플렉'을 '이해'하려는 조금의 시도가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와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아마 그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해를 강요할 수 없다.



요즘 읽는 책중에 심리학자 아들러의 인간이해라는 책에서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정말 깊은 내면까지 알아야하는데 그 방법중 하나는 어린시절의 경험과 생각, 느낌을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 수많은 심리상담을 받는 사례들 속에서 저자는 상대와 수많은 대화속에 오고가는 증거들을 찾아낸다. 왜 이런 상황에 오게 되었는지,,,

자신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몰랐던 피상담자들도 왜 그랬는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 지니고 있던 큰 짐을 덜어내듯,,,, 그 후 삶이 점차 달라진다.

 

 

 

나는 어떠한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는가?

순간의 성화와 순간의 엇갈림과 순간의 선입견으로 인해 누군가를 나와 '틀리다'로 단정지어버리진 않았는가?

 

 

 

사소하거나, 크거나 그러나 '이해'라는 행위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만큼 무거운 무게감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간다.

 

 

온전한 이해는 어렵더라도, 조금씩 누군가를 이해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이 차가운 세상속 삶에 사는 우리의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이 점점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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